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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 일상

오페라 레미제라블

국극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창극(唱劇)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오페라와 같이 여러 사람이 배역을 분담하여 무대에서 연기를 하며 판소리 가락으로 대본을 얹어 부르는 음악극이다. 조선 순종 때 원각사에서 판소리 사설과 가락을 두고 배역을 나누어 분창(分唱)하던 것이, 그 뒤 차차 연극에 가까워지고 대본을 판소리조 가락으로 부르게 되면서 본격화하였다. 광복 직후 배역을 여성만으로 구성한 여성국극단(女性國劇團)이 성행하였으나 1960년 이후 거의 쇠퇴하였다.[출처] 국극 | 두산백과 '라고 나옵니다.

만 50살이 되는 마누라님이 어제 드디어 석사논문을 승인받았습니다.
승인을 받기까지는 마누라님의 노력 뿐만 아니라 가여운 아들님 그리고 머슴이자 남편인 저의 강제동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논문파일의 제목도 수정과 수정을 거듭하면서 여러차례 바뀌었는데, 그야말로 최후의 제목은 '그야말로최종편'이었으며, 승인을 받는 순간 저는 제 박사논문 승인때보다 기뻤습니다.

논문이 통과되자마자 마누라님은 마침 좋은 영화가 있다면서 레미제라블을  보자고 했습니다. 저도 물론 영화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연극은 싫어합니다.
특히 노래하는 연극은 더 싫어합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아마 여섯 살 때로 기억하는데, 연극을 좋아하시던 제 할아버지는 꼭 제 손을 잡고 연극인 국극을 보러가셨습니다.

많은 국극중에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이 있는데 사도세자가 쌀뒤주에 들어가서 죽는 장면이었습니다.

사람이 들어가면 옆 사람들이 말리면 될 것을 아무도 말리지 않고 울기만 했고, 보고 있는 관객들도 말리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또 어떤 배우가 활을 쏘면 무대 뒤에서 누군가가  꿩을 던지는 장면이 기억납니다. 멀리서 봐도 이미 죽은 꿩이 틀림없는데 배우들은 정말 살아있는 꿩을 잡은 것처럼 다들 좋아라 했습니다.

해피엔딩은 전혀 없었던 국극들은 내게서 멀어져 갔고, 할아버지를 따라 극장에 가면 나는 잠자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역시 짙은 화장을 한 배우들이 보기 싫어서 가장 멀리 도망간다는게 영사실 근처까지 올라가서 잠이 들었고,

그날 밤, 할아버지는 닫힌 극장문을 두들겨서 극장에 다시 불을 켜고 혼자 잠들어있는 나를 없고 나온 뒤로 다시는 극장에 데리고 가지 않으셨습니다.

그 뒤로 나는 연극을 싫어했고 지금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대학교때 살던 집 근처 파고다아케이드에서 '에쿠스'를 오래동안 공연했지만 안갔습니다.

대신 사실감있는 영화는 너무나도 좋아합니다.
노래가 많이 나오는 '코요테어글리'는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마누라님이 막내아들도 감명깊게 봤다면서 '레미제라블'을 보자고 했지만,  이번 만큼은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연극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이 글을 읽으시면 적지않이 실망하시겠지만, 어렸을 때의 경험은 육십을 바라보는 나에게 지금도 지대한 영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토요일인 오늘, 저녁은 마누라님이랑 스크린골프를 하기로 했습니다.
이 다음에 노래 안 하는 '레미제라블'이 상영되면 꼭 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