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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 일상

아, 옛날이여 - 겨드랑이 냄새

십 삼사년전인가 치과의사 셋이서 싱가폴 치과전시회를 갔다가 태국을 들러 오던 참이었다.
나와 다른 두 치과의사들은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는 완행비행기답게 여러 인종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 좌석만 두 친구들과 따로 떨어져 있어서, 난 비행기안으로 걸어가면서
혹시나 내 옆에 아리따운 여인이 앉아있지는 않을까하는 기대를 해 보았다.

점점 비행기 뒤로 걸어들어가면서 내 좌석에 가까워졌다.
머리에 모자비슷한 것을 쓴 시커먼 사람들이 보이나 싶더니 그런 차림의
모습의 사람들로 뒷자리가 점령되어 있었다.

우리나라만 단체관광객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나라 사람들인 지는 잘 정확히 모르겠지만 여자가 한 명도 안보였다.

두 친구는 창가에 둘이 오붓하게 앉게 되고, 내 자리는 그 사람들 속에
들어박혀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앞쪽 통로건너 창쪽에 사이좋게 않은 친구들이 날 보고 씩 웃었다.
나도 씩 웃어 주었다.그러나 웃음도 잠시.

난 갑자기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냄새였다. 공포의 겨드랑이 냄새!

한국에서도 몇 번 맡아본 적이 있다.
치과를 찾는 분들 중에서 어쩌다가 이 냄새를 풍기는 경우 아주 고역이었다.
그 때는 진료를 하다보니 할 수 없이 냄새를 맡았다.
하지만 마스크도 하고 있었고, 냄새를 빨아들이는 기계도 있었다.

이번은 상황이 좀 달랐다.
한국사람 것과는 상대가 안되었으며 한두사람의 냄새가 아닌 것 같았다.
또한 한국까지는 네 다섯 시간을 가야했다.

비행기가 뜨기 시작하면서 난 거의 내 정신이 아니었다.
단전호흡을 하는 사람처럼 숨을 끊어서 들이쉬다보니 얼굴이 벌개졌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안전벨트 사인이 꺼지자 마자 난 벌떡 일어나서 얼른 앞뒤좌우를 살폈다.
어디 빈자리가 하나라도 있어라.
나르는 비행기안에서 정신이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았다.

다행히도 내 자리에서 네 칸 앞으로 창쪽에 어떤 아줌마가 혼자 앉아 있었다.
세명이 앉는 자리였는데, 아줌마는 가운데 앉아계시고 통로쪽에는 핸드백을
올려놓고 있었다.

한국아줌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얼굴을 보니 아닌 것 같았다.
짧은 영어실력으로 핸드백이 놓인 이 자리에 앉고 싶다고 했다.
쉽게 그렇게 하라는 대답을 들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줌마는 얼른 핸드백에 손을 올려놓으며,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영어를 하나도 못알아듣는 중국 아줌마였다.
난 좌석을 가리키는데 아줌마는 핸드백을 가르키는 줄로 알았나보다.

그리고 중국아줌마는 유창한 중국말로 뭐라뭐라하는데, 왜 자기 자리를
놔두고 여기에 앉으려고 하느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손으로 뒤를 자꾸 가리키며 말하는 것이 틀림없이 그러했다.

사람들이 하나둘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도움이 전혀 안되는 두 친구녀석들도 왜 저럴까하며 날 보고 있었고,
내 옆자리의 겨드랑이 냄새를 풍기는 시커먼 아저씨도 왜 저 녀석이 자기
자리를 놔두고 저기에서 저럴까하고 의아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이대로 다시 돌아갈 순 없었다.
뒤로 다시 돌아가느니 차라리 서서 가는게 났다고 생각하며 고민을 하던 중에,
머리속에 뭔가 반짝하는 게 있었다. 그래! 바로 그거다!

난 펜을 꺼내어 중국아줌마가 보고 있는 한자로만 된 신문의 공백에
뼈다귀 한개를 그렸다. 그리고 뼈 위에 김이 나는 것 같이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코를 움켜쥐는 시늉을 하며 다시 내 겨드랑이를 손으로 가르키고,
시커먼 아저씨가 눈치못채게 조심스럽게 엄지손가락으로 뒤좌석을 가리켰다.

아줌마는 금방 알아차리고 입부터 웃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입을 막고 웃었다.
그리고 얼른 핸드백을 치우고 자기 옆자리에 앉으라며 좌석을 손으로 토닥거렸다.
아! 냄새로 부터 해방감!

너무너무 고마워서 난 내가 제일 잘아는 한자인 내 이름을 써서 보여 주었다.
그러자 아줌마는 내가 한자는 잘 아는 줄 아셨나보다.
유창한 중국말만큼이나 한자를 잘도 쓰시는데, 겨드랑이 냄새를 없애는
처방을 종이에 죽 써내려갔다.(지금은 어디로 가고 없다.)

아줌마가 홍콩에 내릴 때까지 우리는 한자로 이야기를 하며 갔다.
물론 난 내 이름소개하는 것으로 그쳤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