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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 일상

바지락무침과 백세주

어제 일요일, 우리 가족은 모처럼 어머님을 모시고
새로 산 산타페를 타고 내변산으로 놀러 갔습니다.

놀러 가는 동안은 제가 운전합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합니다.
왜냐하면 술마시면 운전을 못하기 때문이며, 낮술! 죽여주잖습니까?

점심시간이 다 되면서 마누라가 바지락죽을 먹자더군요.
어머니께서는 잘 아는 집이 있다시며 그리로 길안내를 하셨습니다.

전라도에 사는 나도 모르던 이 집을 각처에서 차를 몰고 왔더군요.
점심시간이 좀 지난 시각이었는데, 차들이 빼곡하고 사람도 붐볐습니다.

얼마나 사람이 많은 지, 신이 문지방밖으로 흘러나왔더군요.
개가 물어갈까봐 신을 들고 들어갔습니다. 제건 냄새가 더 끝내주걸랑요.

근데 이게 왠 일입니까?
죽만 있는 줄 알았더니 바지락무침이란게 있더구뇽.

어떻게 나올 지는 아직 모르지만 입안에 침이 흥건히 돌면서
내 머리속에 분명히 떠오르는 술, 술, 술! 술이 술술 떠올랐습니다.

참고로 어머니는 술을 못하십니다.
여태 자식들 결혼식날, 아버님이 건배를 하실 때 한잔이 고작이셨습니다.

백세주 한병을 시키면서 저는 또 생각했습니다.
마누라는 운전때매 술을 안마시겠고, 어머니는 틀림없이 안드시겠고...

마누라는 기분상 일단 한잔은 받지만 마시는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 생각했습니다. '그래, 넌 다 내꼬야. 이히히히."

술이 나오면서 예의상 어머니께 여쭤보았습니다.
"한잔 하실래요?"

"그래, 조금만 따라라."
"?????????"

전혀 뜻밖의 대답에 저는 저으기 놀랐지만 조금만 따르라는 말에 위안이 되었습니다.
마누라잔에는 따르면서도 하나도 안아까웠습니다. 나중에 제 꺼니깐요. 이히히...

아들녀석들은 죽은 잘 안먹고 지 애비의 안주를 축내더군요.
XXX XXX!

술을 혼자만 마시는 것 같아서 어머니께 다시 한번 여쭸더니,
"그래, 조금만 더 따라라."

어머니께 술을 따라드리고 났더니 술이 너무 줄어든 착각에 빠졌습니다.
겨우 반잔을 따른 것 뿐인데...

병바닥을 지키던 술을 제 잔에 마저 따르면서 전 그래도 좀 위안이 되었습니다.
마누라 잔이 아직 남았거든요.

술잔을 기울이며 고개를 젖히며, 또 눈을 지그시 내리깔으며
아주 행복한 표정으로 마누라잔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내 눈을 즐겁게할 황금빛 잔이 차가운 유리잔으로 바뀐 것입니다.

아! 마누라가.. 마누라가... 그렇게도 믿었던 마누라가
나의 작은 즐거움을 송두리채 앗아가버린 것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전 다짐을 했습니다.
맘에 없는 짓은 하지도 말자!